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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2쇄를 출판하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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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 조회 2,207회 작성일 23-04-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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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회 김동진 회장이 2019년에 저술한 헐버트 박사 일대기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2쇄가 지난 41일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2쇄는 쪽수는 똑같으나 1쇄 책 중 일부 오탈자를 수정하였고, 중간중간에 내용을 약간씩 보강하였습니다. 내용이 보강된 쪽수는 2쇄 책 뒷면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2019년 헐버트 박사 70주기에 맞춰 급하게 출판하다 보니 오탈자가 있었던 점을 이번에 바로잡게 되었습니다. 쪽수에는 변동이 없었지만, 일부 추가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탈자 수정 및 일부 내용 보완

 

--14쪽 열다섯 번째 줄에서 열일곱 번째 줄

서울대학교 김기석 교수가 1993년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여 국내로 이전한 뒤 2000년에 서울대학교 아시아태평양교육발전연구단에서 책으로 출판한 바 있다.

 

--15쪽 일곱 번째 줄에서 아홉 번째 줄

독립기념관 소장 편지는 서울대학교 김기석 교수가 헐버트 후손들로부터 원본을 입수하여, 이들 사본이 독립기념관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46쪽 일곱 번째 줄에서 여덟 번째 줄

심계택, 홍순구, 이만재, 조한원, 고희명, 박승길, 조중목, 김삼현, 김필수 등이다. 이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역사 인물이다.

46쪽 열다섯 번째 줄에서 열여섯 번째 줄

내무부 독판이 헐버트 선생에게서 특별한 번뜩임을 보았음이 틀림없다.”

46쪽 각주 6

헐버트는 영문 기록에서 육영공원 관련 관청을 ‘Home Office’ 또는 ‘Foreign Office’로 표기하였다. Home Office는 내무부(1885~1894 존속)Foreign Office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육영공원 운영은 내무부 수문사에서 담당하였다. 내무부는 독판이 수문사는 협판이 으뜸 벼슬이었다. 개교 초기 병조판서 민응식과 사헌부대사헌 민종묵이 수문사 협판을 겸직하며 육영공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66쪽 첫 번째 줄에서 세 번째 줄

헐버트는 이 기고문을 쓰면서부터 조선이 자주독립국이 되어야 한다는 열망을 품었으며, 이 글은 후일 그의 50년 한국 독립운동의 씨앗이었다.

 

--78쪽 각주 15

조선어기고문은 헐버트 후손으로부터 신문 이름과 날짜가 없는 채로 신문 스크랩을 확보하였다. 지은이는 헐버트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188969) 등을 바탕으로 신문 이름과 발행 연도를 추정하였다.

 

--83쪽 열네 번째 줄에서 스물한 번째 줄

당시 서울 거주 서양인들은 사전, 성경 등을 대부분 양면 인쇄와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비용이 적게 든 일본에서 출판하였다. 헐버트는 글씨가 커야 조선인들이 읽기에 편하다며 큰 활자를 사용하였다. 300달러를 지급하고 요코하마에서 완성된 인쇄물을 서울로 들여와, 감리교 출판 기관을 통해 지도를 삽입하여 제본을 완성하였다. 헐버트는 비용은 괘념치 않고 책을 출판하였으며, 실제로 금전적 손실을 보았다고 그리피스와의 편지(1892510)에서 밝혔다.

 

--97쪽 여덟 번째 줄에서 열세 번째 줄

헐버트는 18872월에 발족한 성서번역위원회Committee for Translating the Bible into the Korean Language’에 참여하여 종교 서적 번역 사업에 협력하고, ‘개신교쇄신위원회Protestant Revising Committee’에도 참여하였으며, 18906월에 초교파적으로 설립된 조선성교서회The Korean Religious Tract Society’에서 부회장으로 활약하였다.

 

--103쪽 세 번째 줄에서 열한 번째 줄

또한, 헐버트는 1910년 개신교 선교사들이 발행하던 잡지 <한국선교현장The Korea Mission Field> 1월호에 기고한 <한국은 국가 이상이 필요하다The Needs of a National Ideal for Korea>에서 한국인은 정치적이지도 못하며, 군사적 야망도 없으며, 그렇다고 장사꾼 기질이 강한 것도 아니다. 정직하고 검소하며, 경작지도 충분하여 탐욕도 없다.”라고 한국인의 기질을 정의하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유일한 자원은 기독교 정신의 구현the development of Christian spirit”이라면서, “한국은 기질이나 자신들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아 순수 기독교 국가a genuinely Christian nation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16쪽 열다섯 번째 줄에서 열일곱 번째 줄

헐버트는 18975월 한성사범학교 책임자가 되었다. 계약서상 직함은 교습敎習이었으나, 자율권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하는 특별한 위치였다.

116쪽 각주 12

1897610일 자 고용계약서를 보면 계약기간은 5년이며, 월급은 은화 225달러에서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올리기로 했다.

헐버트의 숭고한 한국 사랑 정신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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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이 기울어 가고 열강의 싸움터가 된 국가에 초빙 교사로 오신 헐버트 박사님은 한민족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시고 한민족을 끔찍이 사랑하신 선각자였습니다.

늘상 마음의 빚이 있었고, 조그마한 성의라도 보탤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차에, 낡은 홈페이지가 제대로 열리지 않고 모바일에서 열람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부족한 역량이나마 새 홈페이지의 개발 및 기증을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가 보여 주신 업적도 뛰어나지만,사재를 털어 평생 헐버트 박사님의 생애를 연구하시고 자료를 발굴하면서 동분서주 하신 김동진 회장님께도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근대화의 여명기에 한민족의 독립과 발전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한국의 잠재적 역량을 발굴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신 헐버트 박사의 기념 사업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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