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상 수상 소감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 조회 3,383회 작성일 20-11-10 11:13본문
<외솔상을 받으며>
외솔과 헐버트의 역사적 만남
겨레의 거룩한 스승이신 외솔 최 현배 선생님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영예스러운 외솔상(실천부문)을 받게 된데 대해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대표하여 먼저 성 낙수 회장님을 비롯한 외솔회 관계자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이번 상은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더 열심히 헐버트 박사의 정신을 기리고 우리 말글 사랑운동에 앞장서라는 의미로 주는 상이며,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성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상은 기념사업회를 책임 맡고 있는 저 개인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상일뿐만 아니라, 한글 역사의 상징 인물인 외솔과 헐버트가 시공을 초월하여 교감하는 역사적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외솔 선생님의 함자를 처음 들었습니다. 1962년 봄 어느 날 3학년 선배가 “웃기지, 말본 선생이 그러는데 최현배 선생님이 ‘이화여자대학교’를 ‘배꽃계집아이큰배움집’이라고 했대”라며 껄껄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학생은 재미 반 비웃음 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으나 저에게는 ‘아, 이 분은 어쩌면 민족적 주체성이 뚜렷한 분일거야. 이 분이야말로 참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시는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며 외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저도 모르게 우러났습니다. 55년이 지난 지금 마치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품었던 외솔 선생님에 대한 경외심이 이 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더 없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이 상을 받는 의미는 어느 개인의 기쁨과는 비견할 수 없는 역사적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헐버트 박사는 10여 년 전만해도 그저 선교사, 독립운동을 좀 도운 외국인 정도로 아주 피상적으로만 우리 사회에 알려졌습니다. 본 기념사업회는 2009년 한글학회와 연을 맺어 한글 단체에 헐버트 박사의 한글과 관련한 업적을 소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통해 본 기념사업회는 헐버트 박사가 1891년에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소개하고, 헐버트 박사께서 저술한 한글의 문자적 우수성과 세종 임금의 위대성에 대한 학술 논문들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상당수의 우리 말글 연구가들이 ‘헐버트’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사민필지>의 한글사적 가치도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기념사업회는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고 한글을 정의한 헐버트 박사의 한글 사랑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나섰습니다. 동시에 한글 단체의 한글을 지키고 가꾸는 운동에도 적극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값진 상을 받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직도 ‘헐버트’라는 이름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낯선 이름입니다. 이번 외솔상 수상을 계기로 헐버트 박사의 한글 사랑 업적이 국민들에게 더욱 알려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외솔상의 의미는 비단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의 기쁨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이 상은 외솔 선생님과 헐버트 박사가 역사 속에서 만나 한글 사랑에 대한 뜨거운 교감을 나누는 연결고리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은 같은 시대에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나라사랑, 한글, 교육에 있어서는 거의 같은 이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외솔 선생님은 아시다시피 학자로서만 활동하신 것이 아니라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누구보다도 앞선 분입니다. 헐버트 박사 역시 미국인이지만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한국을 위해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일본의 박해로 이 땅을 떠나신 분입니다. 한글 사랑과 관련하여서는 두 분의 이상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일치하였으며, 더 나아가 두 분은 항상 이상에 머물지 않고 한글 발전을 위해 실천에 앞장서는 행동하는 지성이셨습니다. 두 분의 교육 철학에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두 분 모두 한자가 아닌 한글로 교육하여야 교육을 확장할 수 있고 한민족의 문명 진화를 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교과서를 제대로 갖추고 올바로 책을 만들어야 진정한 교육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1886년 내한하여 한글을 공부한 지 1주일 만에 조선인들이 위대한 한글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내한 4년 만에 <사민필지>를 순 한글로 저술하면서 한글 전용을 최초로 주창했습니다. 이 책은 개화기 조선의 청년들을 크게 감화시켰으며, 주시경, 이승만도 배재학당에서 이 책으로 공부하였습니다. 외솔 선생님도 선생님이 쓰신 책 <한글갈>에서 <사민필지>는 “문 닫고 살던 조선사람 일반에게 세계 지식을 계몽하기에 큰 공헌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이어서 헐버트 박사는 주시경, 지석영, 김가진 등과 한글 맞춤법 정비, 국문연구소 설치 등을 논의하는 등 한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또 교과서 편찬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학교에는 반드시 교과서가 필요하며 그것도 한글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한글로 교육해야 교육의 질과 양이 높아지고 교육의 기회가 모든 민중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교육평등이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헐버트교과서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사비를 들여 15권의 교과서를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외솔 선생님이 얼마나 크게 한글 발전에 공헌하였는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한글은 목숨’이라고 되뇌신 말씀이 외솔 선생님의 한글 사랑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솔 선생님은 주시경 선생님을 이어 한글 맞춤법을 완성하시고, 일제에 의해 감옥살이를 하시는 등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도 조선어학회를 주도적으로 이끄시고 사전을 편찬하셨습니다. 특히 1945년 광복 후 우리 교과서를 한글 전용으로 편찬하신 일은 교육사에 가장 빛나는 업적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 확립에도 크게 기여한 공적입니다.
외솔 선생님과 헐버트 박사는 생전에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두 분은 이 상을 통해 나라의 미래에 대해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계시지 않을까요. 아마도 한민족이 하루 빨리 통일을 이뤄 세계사에 우뚝 설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하고 계실 것입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이 상을 계기로 더욱 용기를 얻어 한글 발전과, 우리 말글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외솔회에 감사 인사 올리며,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성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과 회원님들, 후원을 보내준 기관, 개인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2017년 10월 26일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김 동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