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박사는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통역관이 아니라 정식특사였음을 정정방송 할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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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 조회 1,791회 작성일 20-11-10 16:39본문
다음은 2008년6월1일 KBS에서 방영된 TV쇼 진품명품에서 사민필지에 대해 방송하면서 헐버트박사에 대한 부연설명 중 잘 못 설명된 부분이있어 KBS국장및 방송 연출자에게 정정방송 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이메일내용 입니다.
________________ 다 음- _________________
귀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헐버트박사 기념회 홍보실입니다.
TV쇼 진품명품 2008년 6월1일(660회 분)에서 사민필지에 관계해서 방송된 내용을 아주 잘 보았습니다.
또한 방송을 통해 헐버트박사의 업적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보다 음지에서 양지로 빛을 보게 된 부분은 대단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내용 중 고서감정위원이신 김 영복 위원께서 헐버트박사님에대한 부연 설명 중 1907년 헤이그에서 있었던 만국평화회의에서 헐버트박사가 통역관으로 참석했다는 크게 잘못 설명하신 부분이있어 정정방송을 요청합니다.
헐버트박사께서는 조선이 을사늑약에 의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길 것을 저지하기 위해 고종의 특명을 받고 1905년 미국의 루즈벨트대통령을 만나기위해 미국을 방문했고, 루즈벨트가 카츠라태프트밀약에 의한 자국이익 때문에 헐버트박사를 만나주지 않자 다시 고종황제로 부터 제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특사증을 정식으로 부여받고 조선의 외교권 탈환을 호소 하기 위해 각국의 원수를 만나라는 고종의 정식특사로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내탕금까지 맡길 정도로 돈독한 신의를 황제로 부터 받으신 분이셨습니다.
헤이그에서 조선의 주권확립을 세계 만방에 호소하시다가 이로인해 일본의 심한 박해를 받아 그토록 사랑하던 조선으로 귀국하지 못 하고 헤이그에서 바로 미국으로 추방을 당하게 되는 헤이그밀사 사건 이야말로 박사에게는 중대한 의미의 사건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우리 언론에서도 2007년 6월에 보도된 바 있듯이 헤이그 밀사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 3인이 아니라 헐버트 박사가 포함된 4인이라고 역사를 정정한 바 있습니다.
이렇듯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서의 헐버트박사의 업적과 열정은 한국인 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빛나는 업적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태극훈장 건국장을 받으신 독립운동가
로 추서되어 계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희 홈피(www.hulbert.or.kr)에 방문하셔서 살펴보시면 좀 더 정확한 자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면서 잘못된 내용을 꼭 정정해서 방송해 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첨부 된 파일은 고종으로부터 헤이그특사로 임명 되었던 당시의 임명장을 참고로 첨부했습니다.
올바른 방송으로 국민들에게 항상 마음의 양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좋은 방송 만들어 주시기를 기원하며....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홍보,조사실장 강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