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동진 독립신문의 숨은 산파 헐버트 박사 _ 동아일보 2008년4월 7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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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 조회 1,842회 작성일 20-11-10 15:1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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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분야 : 피플/칼럼
등록 일자 : 2008/04/07(월) 02:51
[기고/김동진]독립신문의 숨은 산파 헐버트 박사
독립신문은 서재필 박사가 1896년 4월 7일 한글로 만든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우리는 이날을 신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신문이 탄생하기까지 구한말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문명화에 큰 공헌을 한 이방인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로 미국인 헐버트 박사다. 그는 1886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에 왔다. 육영공원은 과거에 급제한 관리와 양반집 자제들에게 영어 및 서양식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고종의 후원으로 설립됐다. 그는 5년 동안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891년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발간했다. 사민필지는 역사, 천문, 각국의 현황 등을 소개한 종합 사회과학 서적이다.
5년 동안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간 헐버트 박사는 1893년 감리교 출판기관인 삼문출판사(Trilingual Press)의 책임자로 다시 조선 땅을 밟는다. 삼문출판사는 배재학당, 개신교 등에 출판물을 제공한 최초의 근대식 출판사다.
헐버트 박사의 자서전(Echoes of the Orient)을 보면 서재필 박사가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자신과 출판 및 신문 방향에 관한 많은 토론을 했으며, 독립신문 발간을 도와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독립신문은 한글판 2쪽, 영문판 2쪽으로 돼 있었다. 영문판은 한글판의 단순 번역이 아닌 별도의 편집물이다. 또 헐버트 박사의 동생도 미국에서 건너와 독립신문 일을 하면서 헐버트 박사 형제가 함께 독립신문 편집에 기여했다고 한다.
헐버트 박사와 서재필 박사는 배재학당, 독립협회 등을 통해 이미 친숙하게 지내고 있었으며,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대해서도 뜻을 같이해 왔다. 한성사범학교 교장 등을 지냈으며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한국의 살길은 교육뿐이다”라고 외치던 헐버트 박사와 우리 민족의 최고 가치로 교육을 주창한 서재필 박사는 독립신문을 통해 언론, 교육, 한글에서 이미 사상적 동지가 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헐버트 박사가 독립신문 출발에 끼친 공헌은 지대하다. 한 이방인의 우리나라 출판 및 언론 발전에 대한 공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헐버트 박사는 을사늑약 당시 고종 황제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일본의 침략을 막아 달라고 호소했으며,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활동했다. 이런 공로로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에 추서됐다.
독립신문 창간 112주년을 맞아 서재필 박사와 함께 헐버트 박사의 업적에 새삼 고개를 숙인다.
김동진 헐버트기념사업회장 SC제일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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