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편지/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님, 한민족을 위한 당신의 기도가 절실합니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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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 조회 2,085회 작성일 20-11-10 21:46본문
존경하옵는 회원님들께,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오는 2019년 3월 1일 3.1대혁명 100주년을 맞아 벌이는 100년편지 행사에 본 회 김동진 회장께서 헐버트 박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오늘 발표한 김동진 회장의 100년 편지를 첨부합니다.
회원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항상 함께하길 기원드립니다.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홍보실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백년편지 홈페이지
http://korea100.kr/tc/
100년 편지
이백 예순 세번째 편지 - 2017년 4월 18일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님, 한민족을 위한 당신의 기도가 절실합니다! -김동진-
한민족을 그리도 사랑하셨던 헐버트 박사님,
저는 지금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는 ‘백년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도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워싱턴에서, 오하이오(Ohio)에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셨습니까. 이 ‘백년편지’ 쓰기 행사는 박사님과 잘 아시는 분들의 후손들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글 발전을 위해 박사님과 머리를 맞댔던 동농 김가진 선생의 손자(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와 일제의 감시를 피해가며 헤이그만국평화회의 밀사파견을 박사님과 함께 모의했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종찬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사님께서 일제에 쫓겨난 지 40년만인 1949년 한국에 환국하시었으나 도착 1주일 만에 서거하시어 양화진 한강변에 영면하신 다음 해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박사님께서 을사늑약 이듬해에 쓰신 라는 책을 읽고 박사님의 한민족 사랑이 이 땅에서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박사님은 이 책에서 그 누구보다도 한민족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시고, 한민족의 나라 잃는 서러움을 피눈물로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 헌사에서 ‘한민족은 언젠가 잠에서 깨어 민족정기가 살아 있음을 증명할 것’이라고 한민족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 책은 저를 완전히 박사님께 옭아매어 그때부터 박사님의 생애를 파헤쳐왔습니다. 지금도 박사님의 공적을 한민족 역사에 올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1886년 조선에 오시자마자 한글에 감탄하셨지요. 박사님은 한글의 우수성을 최초로 학술논문을 통해 밝히시면서 한글 전용을 최초로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가 조선인들은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쓸 것이다.”라고 예언하지 않으셨습니까. 과연 예언하신 대로 지금 한글은 한민족의 문자로 확실히 자리 잡았습니다. 박사님께서 주창하신 “조선은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로 교육을 확장하여 문명 진화를 이뤄야 한다.”라는 교육 철학이 실천된 것이지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1891년에 출간한 조선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가 곧 ‘대한민국 문화재’로 등록 될 것 같습니다. 서울시의 승인을 거쳐 문화재청에서 최종 심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박사님의 한글 공적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은 2014년 박사님께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박사님의 증손자인 킴벌(Kimball)이 미국에서 와 훈장을 대신 받았습니다. 서울시에서는 박사님의 한글 공로에 감사하고자 광화문 육조거리 왼편(현재 주시경마당)에 박사님과 배재학당 제자 주시경 선생의 부조 동상을 같이 세웠습니다. 이 부조 동상에 박사님께서 세계만방에 외치신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아리랑은 조선인들에게는 쌀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1896년에 역사상 최초로 아리랑에 서양음계를 붙이셨지요. 그러면서 “아리랑은 영원한 한민족의 노래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리랑은 박사님 예언대로 한국을 넘어 세계의 노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박사님에게 감사하기 위해 경북 문경시에서 2013년 문경새재에 ‘헐버트아리랑기념비’를 세웠습니다. 2015년에는 박사님께 제1회 ‘서울아리랑 상’을 추서하였습니다. 이 상은 박사님 무릎에서 놀았던 손자 브루스(Bruce)가 대신 받았습니다. 브루스가 어릴 적에 박사님께 배웠다며 ‘하나, 둘, 셋......’과 ‘지게’를 한국어로 말하여 시상식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박사님께서 1905년에 출간한 라는 역사책도 이제 한국 근대 역사책의 원전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이 책에서 강조하신 한민족의 독창성과 자주성이 후학들에 의해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2010년 박사님의 일대기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라는 책을 출간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박사님 내한 130주년을 맞아 박사님께서 저술하신 논문과 신문 기고문 57편을 담은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박사님의 학문적 기품에 혀를 내두르면서 박사님에게 ‘한국학의 개척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에 온 지 24일 만에 쓴 첫 신문 기고문을 읽고 박사님의 조선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은 조선의 근대화 노력을 도와야 하며 특히 기독교 국가들이 앞장서야 한다.”라는 대목에서 어떻게 23살의 서양 청년이 조선을 그리 사랑하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의아스럽다고들 합니다. 박사님은 한민족과 관련하여 15권의 단행본과 200편이 넘는 논문 및 기고문을 남기셨지요. 제가 그 글들을 거의 다 수집해 놓았습니다. 앞으로 이 글들을 번역, 출판하여 박사님의 한민족 사랑을 세상에 올바로 알릴 것입니다.
근년에 들어 박사님의 독립운동에 많은 사람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을 막아보고자 고종 황제의 밀사로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에게 고종의 친서를 전하려 미국에 가셨지만 얼마나 좌절이 크셨습니까. 그러나 그때 고종 황제께서 보낸 “나는 조약을 승인한 적이 없소. 미국을 설득하여 조약을 무효로 하시오.”라는 전보를 미국 국무성에 제출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전보가 지금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확실한 증거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1907년에는 고종 황제의 밀사로 임명되어 이상설, 이준, 이위종 밀사와 함께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헤이그에 가셨지요. 그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 행 기차를 타시면서 조약 상대국 원수에게 보내는 고종 황제의 친서를 일본이 강탈할까봐 옆자리에 앉은 불(Bull) 부인의 어린이 옷가방에 넣고 간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습니까. 그리고는 헤이그밀사파견사건 때문에 일본의 박해로 미국으로 쫓겨나셨지요. 미국에서도 생계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강연으로 필봉으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셨습니다. 박사님은 또 배신자 소리까지 들으면서,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위반하며 한국을 일본에 넘겼다고 뉴욕 타임스 등을 통해 비난하셨지요. 어느 누가 남의 나라를 위해 자기나라 대통령을 그렇게 강하게 비판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이 세상에 박사님이 유일할 것입니다.
금년이 3.1혁명 98주년입니다. 박사님은 3.1독립만세 소리를 프랑스에서 들으셨지요. 그때 파리강화회의를 위해 파견된 김규식 임시정부 대표와 함께 파리에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셨지요. 그리고 곧바로 워싱턴으로 달려가 미국 상원 국제관계위원회에 <한국을 어찌할 것입니까(What About Korea?)>라는 제목의 독립호소문을 제출하셨지요. 3.1혁명 당시의 일본의 잔학상을 폭로한 이 글을 사진과 함께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았습니다.
박사님께서는 “교육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치시면서 육영공원, 배재학당, 한성사범학교(서울대학교 전신), 관립중학교(경기고등학교 전신)에서 20여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 땅에 근대 교육의 주춧돌을 놓으셨지요. 그러면서 항상 정의, 인간애, 애국심의 가치관을 실행에 옮기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박사님의 영향으로 이 땅에서 많은 선각자가 배출되었으며, 박사님의 언행의 울림은 일반인들에게까지 크게 퍼져나갔습니다. 심지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헐버트는 한국인으로서는 하루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뤼순감옥에서 일본 경찰에 공술하기까지 했습니다.
박사님께 전하고 싶은 소식이 너무 많습니다만 지면이 짧네요. 마지막으로 꼭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렇게 애통해 하셨던 남북분단이 아직도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당신의 소원대로 한민족이 통일을 이뤄 세계사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강렬히 기도해 주십시오. 박사님의 한민족을 위한 기도가 틀림없이 한민족에게 크게 힘이 될 것입니다. 부디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김동진,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