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김동진 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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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 조회 2,823회 작성일 20-11-10 15:47본문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 "첫 한글교과서 사민필지, 한글·한국 사랑 넘쳤죠"
입력 2014-10-06 21:34:27 | 수정 2014-10-07 01:06:32 |
한글날 금관훈장 받는 故 헐버트 박사
호머 헐버트 박사는
1886년 선교사로 한국에 첫 발…배재학당, 이승만·주시경 등 키워
헤이그 특사 배후로 지목돼 추방
40여년 금융인…김동진 회장은
대학때 헐버트 저서와 첫 만남
JP모간 거쳐 외환銀 부행장 지내…1998년 외채 연장협상에도 기여
“이제 조금이나마 헐버트 박사님에 대한 빚을 갚았네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한글날인 9일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는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선생(1863~1949)을 두고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사진)은 이렇게 말했다. 1999년 그가 사업회를 만든 지 15년 만에 겨우 이룬 성과다. 김 회장은 “박사님은 기독교 사상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한 선교사이자 최초의 근대 한글학자이지만 한국은 그동안 이를 너무 잊고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명문 다트머스대를 졸업하고 유니언신학교에서 수학하던 헐버트는 감리교 선교사 자격으로 1886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그에게 영어를 배웠던 사람 중 한 명이 이완용이다.
“박사님은 ‘세상 어디에도 견줄 문자가 없는 위대한 한글이 널리 쓰이지 못한다’며 무척 비분강개하셨어요. 그래서 1890년 5대양 6대주를 아우른 천문지리사회총서 ‘사민필지(양반과 백성 모두 알아야 할 지식)’를 내셨습니다.” 사민필지는 놀랄 정도로 정제된 한글로 펴낸 세계지리 교과서다. 이 책은 이번 훈장 추서 과정에서 ‘한글 범용의 시발점’이 됐다고 인정받았다.
헐버트는 사민필지를 펴낸 뒤 미국으로 갔다 1893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 배재학당 교사로 활동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주시경 선생 등이 당시 그의 제자였다. “근대적 학칙, 시스템을 전부 만드셨어요. 근대 교육의 아버지이자 그 어떤 한국인보다 한글과 한국을 사랑했던 분입니다.” 헐버트는 헤이그 특사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일제로부터 강제 추방당한 뒤 미국에서 황혼까지 서재필 선생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다.
김 회장은 대학 시절 헐버트의 저서 ‘대한제국멸망사’를 보고 헐버트의 한국 사랑에 푹 빠졌다. 김 회장은 국내 산업 및 금융 발전사를 온몸으로 지켜본 금융인이다. 1967년 한일은행에 입사했고 1978년 케미컬은행 한국지점으로 옮겼다. 그는 “안 뽑힐 줄 알았는데 헐버트 박사님을 연구하면서 쌓은 영어 실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후 인수합병(M&A)에 따라 체이스맨해튼, JP모간에서 근무하며 대표까지 올랐고 외환은행 도매총괄 부행장,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부행장도 지냈다.
외국계 은행 일을 하며 미국 출장을 다닐 때 틈만 나면 헐버트의 유족 등을 찾거나 각지 도서관을 다니며 문헌 연구를 했다. 후순위채, 자산담보부증권(ABS) 등 국내에 선진 금융기법을 들여오는 데도 중심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체이스맨해튼한국 IB사업본부장으로서 유종근 전 전북지사, 변양호 전 보고펀드 대표 등과 함께 외채 만기 연장에 기여했다. 이 공으로 2003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1970~80년대 우리 기업들이 외화가 부족해서 쩔쩔맬 때 이리저리 뛰었는데 이병철, 정주영 회장께서 ‘젊은 사람이 애써줘 고맙다’고 하시던 게 기억나네요.”
그는 최근 KB금융지주 사태 등을 언급하며 “지주사 체제는 (회장·행장 중) 누가 최고경영자(CEO)인지 불분명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출범할 때부터 경고했다”고 말했다. “박사님은 항상 ‘올바른 사람을 제 자리에 보내야 문명의 진화가 이뤄진다’고 강조했어요. 지난 10여년간 국내 금융지주에 얼마나 걸맞은 CEO들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박사님을 알고 가치관을 본받았으면 합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