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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덴하흐>, 헐버트와 헤이그 특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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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 조회 2,661회 작성일 20-11-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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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네덜란드 덴하흐,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1905년에 일제는 강압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고종은 서울에 있는 각국 공사들을 상대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국권회복 의지를 전달하며 후원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에 고종은 1907년 6월 네덜란드 덴하흐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극비리에 3명의 특사와 헐버트를 파견한다. 평리원 검사를 지낸 이준, 의정부 참찬을 지낸 이상설, 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아들로 러시아 주재 한국공사관의 참사관을 지낸 이위종이 바로 그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하여 일제의 침략행위를 폭로하고 국권회복의 돌파구를 열겠다는 특사들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한다. 사실 만국평화회의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연 국제회의였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이미 식민지나 다름없다고 판단되는 약소국의 호소가 달가울 리 없었다. 열강들의 냉담한 태도에 실망한 특사들은 대신 만국평화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온 세계 각국의 신문기자들에게 눈길을 돌리고, 국제기자클럽에서 한국인을 위한 호소라는 연설을 하기로 한다.
뒤늦게 특사파견 사실을 알게 된 일제는 고종을 강제 폐위시키고, 궐석재판을 열어 이상설과 이위종에게 각각 사형과 종신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헐버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이상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한혁명당을 창설하여 독립운동을 펼치다 병사한다. 황실 근위대 장교였던 이위종은 붉은 군대에 가담해 러시아혁명에 참여하고, 한인 부대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준의 죽음에 대해서는 병사설, 독살설, 자살설 등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이는 이준이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단 한 명의 목격자도 없는 가운데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선택한 설은 독살설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전혀 새로운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소설 <덴하흐> 책 소개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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