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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파란 눈의 외국인 헐버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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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 조회 473회 작성일 20-11-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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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파란 눈의 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

-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황제의 밀사, 그리고 항일독…

- 1949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국 땅에 문명과 정의가 만개하도록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서울시정일보 김삼종기자]

본지에서는 이번 호에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파란 눈의 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는 누구인가를 소개한다.

인종과 국가를 넘어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는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황제의 밀사, 그리고 항일독립운동가다.

헐버트박사는 1863년 미국 버몬트 주에서 태어나셨으며,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명문 다트머스(Dartmouth)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유니언 신학대학에 재학하던 중 1886년 약관 23세의 나이로 미지의 세계인 조선의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1949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국 땅에 문명과 정의가 만개하도록 그리고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해 사랑과 정열을 불태우셨습니다.

박사께서는 1886년 7월 조선 조정이 세운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내한하시어 한민족과 함께 호흡하시며 여러 분야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내한 초기 고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과 함께 교육 분야에서 크게 활동하시며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기틀을 잡았다. 헐버트박사의 한국과의 인연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정부가 세운 근대식 교육기관으로써 양반집 자제와 관리들에게 서양식 교육을 가르치기 위해 1886년 9월 23일 35명의 학생으로 개교를 하였는데 1883년 민영익 등이 보빙사로 미국에 다녀오고 미국과 수교가 됨으로써 근대식 교육기관 및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고종은 육영공원 설립계획을 즉각 수락했다.

학교의 편성은 문무현직관료 중에서 선발된 학생을 수용하는 좌원과 양반자제에서 선발된 학생을 수용하는 우원의 두 반으로 되어 있었다. 이중 교수들은 모두 미국에서 초빙하였으며 헐버트, 길모어, 벙커의 3명 중 한명이 헐버트박사였다. .

이 육영공원의 교수과목은 주로 영어에 치중하였으나 각국의 언어, 역사, 정치 및 대산법 등을 가르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슴 아픈 일은 조선 조정이 세운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은 정부의 재정핍박 및 학생들의 열의 부족 등으로 1894년 폐교되었으며, 한성영어학교로 개편되었다.

육영공원에서 있었던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고종이 직접 학생들을 상대로 시험을 치뤘다고 한다. 답안지를 미리 주어 고종이 직접 등급을 매겼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문제에 답하기를 Do not 대신 줄임말인 Don’t 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고종이 틀렸다고 했는데 헐버트가 그것은 Do not의 준말이니 맞다고 다시 설명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학생들이 생각보다 답을 잘하기에 나중에 알고 보니 왕이 보는 시험이라 왕에게 잘 보이게 하기위해 극성스러운 학생들의 부모들이 시험관을 통해 문제를 먼저 알았다고 한다.

헐버트는 이점이 못마땅했으나 시험이 끝난 뒤고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냥 지나갔다고 한다.

지금이나 예나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헐버트박사는 내한한지 4년 만인 1890년 한국인의 교육 창달을 위해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 발굴, 교과서 시스템 정비, 최초의 종합역사서 《한국사 History of Korea》 저술, 서재필박사와함께《독립신문》창간, 아리랑을 최초로 서양식 악보로 채보, YMCA 창립 등의 크나큰 족적을 남기셨다.

더 나아가 일제의 조선 식민화 시도를 저지코자 1905년 고종 황제의 밀사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을 방문, 을사늑약에 대한 미국의 방관적 태도에 거세게 항의하는 등 국내외에서 백방으로 우리나라 주권수호를 위해 활약하셨습니다.

특히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한국문제가 토의되도록 당시 우리나라 조약상대국을 방문하는 고종 황제의 특사가 되십니다.

일본의 감시 속에 헤이그에 도착 이상설, 이준, 이위종 특사를 도왔으며 그들과 함께 일본의 부당성을 고발하십니다. 동 사건으로 고종 황제가 퇴위되면서 일본의 박해로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헐버트 박사는 미국에 돌아가서도 이승만, 서재필 등과 함께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셨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해방 후 40년 만에 86세의 노구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아 1949년 8월5일 도착 일주일 만에 서거 한국 땅에 묻힘으로써 평소 소원했던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는 소망을 이루셨습니다.

박사님의 장례는 외국인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 이듬해인 1950년 3월 1일 대한민국정부는 외국인에게는 최초로 박사님께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정부는 또 2014년 10월 9일 문화, 예술 분야의 최고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 업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항일 독립운동-1895년 명성황후 시해 직후 고종을 일제와 친일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종 침전에서 불침번을 섬. 고종 황제의 외교밀사로 활약(1905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 고종황제 친서 전달 시도,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일제의 침략주의를 언론 기고 및 회견, 강연을 통해 국제사회에 고발.

미국에서 이승만 서재필 등을 도와 한국인들과 함께 독립운동 전개 등등이며

2번째로 한글에 대한 공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저술(1890년).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최초의 논문 발표(1892년). 다수의 한글 및 세종대왕의 우수성에 대한 논문 발표.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고 선언(1905년-한국사)을 하였다.

또 아리랑을 역사상 최초로 오선지에 채보하고 가사를 채록(1896년)하였으며 독립신문 창간 등 언론 발전에 기여(영문판 주필, 띄어쓰기 도입에 공헌)하였다.

특히 근대교육의 아버지. 육영공원(최초의 관립 근대식 학교, 1886년), 한성사범학교(1897년), 관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1900년)에 재직하며 학교 운영 규칙 제정 및 교과서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1950년에 대한민국 정부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 추서하였으며 2013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외국인 최초로 ‘이달의 독립운동가’(7월)에 선정되었다.

한편 헐버트박사 한국 땅에 묻히게 되는데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 이후 일본이 박해로 미국으로 귀국. 1909년 사재를 정리하기 위해 미국 경호원 보호 아래 일시방한. 1949년 40년만에 이승만박사의 초청으로 광복절행사에 참석키 위해 7월 28일 감격적인 한국 땅을 밟음. 이미 86세인 헐버트박사는 1949년 8월 5일 돌아오신지 일 주일 만에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여독 및 노환으로 타계하신다.

특히 이 와중에 헐버트박사는 미국을 떠나기 전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고 하시면서 한국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헐버트박사는 당신의 소원대로 한국 땅에서 작고하시고 1949년 8월 11일 최초의 외국인 사회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하고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히셨다.

또한 서거 이듬해인 1950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훈장 “태극장”을 헐버트박사에게 추서하였으며 1999년 8월 헐버트박사 50주기 추모식에서 50년 동안 비워있던 묘비명을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헐버트박사의 묘”라고 써 넣어 86년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에 대한민국에서는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김동진(전JPMorgan Chase은행 한국회장))는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의 정의, 평화, 인간애,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보급하여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건설에 일조하고자 1999년 설립되어 헐버트 박사의 위대성을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모국인 미국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대한국민이 보은을 아는 문화민족으로 인식되고, 한미우호증진 및 대한민국의 브랜드 향상을 가져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본 기념사업회는 매년 헐버트 박사 추모식을 거행하며, 헐버트 박사의 업적 발굴, 후손초청, 학술대회, 기념물 설치, 전집 발간 등의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헐버트의 숭고한 한국 사랑 정신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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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임석록, 개발실장 김순민

구한말, 조선이 기울어 가고 열강의 싸움터가 된 국가에 초빙 교사로 오신 헐버트 박사님은 한민족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시고 한민족을 끔찍이 사랑하신 선각자였습니다.

늘상 마음의 빚이 있었고, 조그마한 성의라도 보탤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차에, 낡은 홈페이지가 제대로 열리지 않고 모바일에서 열람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부족한 역량이나마 새 홈페이지의 개발 및 기증을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가 보여 주신 업적도 뛰어나지만,사재를 털어 평생 헐버트 박사님의 생애를 연구하시고 자료를 발굴하면서 동분서주 하신 김동진 회장님께도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근대화의 여명기에 한민족의 독립과 발전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한국의 잠재적 역량을 발굴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신 헐버트 박사의 기념 사업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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