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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조선일보/高宗이 헐버트박사에 보낸 편지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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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 조회 362회 작성일 20-11-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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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宗이 헐버트(대한제국 교육·외교 자문관)박사에 보낸 편지 첫 공개

• 헐버트박사 58주기 추모식서 외손녀가 전달 ‘친구’라 부르며 미국가는 생질 부탁하는 내용

발행일 : 2007.08.04 / 사회 A12 면 기고자 : 유용원

대한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日帝)에 맞서 싸우다 강제 추방까지 당했던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에게 보낸 고종 황제의 친서와 헐버트 박사가 이승만 박사에게 보낸 서한이 3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지 내 헐버트 박사 묘전에서 열린 헐버트 박사 58주기 추모식에서다. 이날 추모식에서 헐버트 박사의 외손녀 주디 애덤스(85) 여사는 이들 서한과 사진 등 유품 30여 점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에 전달했다.

기념사업회측에 따르면 고종 황제는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된 이후인 1909년 1월 헐버트 박사에게 보낸 친서에서 ‘조카(생질·甥姪)인 조남복이 미국 YMCA에 연수를 갔다. 헐버트 박사가 (당신의) 아들처럼 잘 돌봐주라’고 부탁했다. 친서는 앞면에는 붓글씨로 쓰인 한자로 돼 있으며, 뒷면에는 같은 내용이 영문으로 타이핑돼 고종 황제의 도장이 찍혀 있다.

또 헐버트 박사가 1948년 12월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는 ‘(저는 영국) 웨스터민스터사원보다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헐버트 박사는 1886년 대한제국의 초청으로 23세의 나이로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뒤 교육 분야 총책임자 및 외교 자문관으로 고종 황제를 보좌했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으로 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1906년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그는 이후 40여년 만인 1949년 7월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가 일주일 만에 8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이듬해인 1950년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봉춘 서울지방보훈청장과 김국주 광복회장, 신영섭 마포구청장,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 제프리 존스 미 상공회의소 명예회장, 광복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자료실에 조선일보 원본/신문파일을 올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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